2019년 2월 13일 수요일

우주에서 본 지구의 하트들

heart1.jpg » 남태평양의 무레아섬. 빨간색은 초목이 무성한 지역인데 심장을 연상시키기 위해 색 처리를 한 것이다. ESA 제공

2월14일 발렌타이데이 즈음해
유럽우주국이 공개한 사진들
내 심장 다루듯 지구도 소중히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푸르게 빛나는 지구 그 자체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고 우주비행사들은 말한다. 그리곤 이 아름다운 지구를 잘 지켜야겠다는 다짐을 한다고 한다. 이를 조망효과라고 부른다. 그런데 위성들이 지구 곳곳을 촬영한 사진 속에는 좀더 놀라운 지구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유럽우주국(ESA)은 매년 발렌타인데이(2월14일)에 즈음해 우주에서 찾아낸 하트 모양의 지구 이미지를 공개해 오고 있다. 제눈에 안경이란 말도 있듯이 아름다운 것에 대한 생각은 각기 주관적이지만,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올해는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하트 모양의 섬과 호수수 3곳을 잇따라 공개했다. 첫번째 사진은 남태평양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있는 하트 모양의 화산섬 무레아(Moorea)다. 폴리네시아에서 두번째로 큰 섬으로 가장 큰 섬인 타히티 북서쪽 20km 지점에 있다. 발렌타인데이를 기념해 초목이 무성한 녹지를 붉은색으로 처리했다. 섬 외곽은 산호초가 둘러싸고 있다. 유럽우주국의 지구환경 모니터링 프로젝트인 코페르니쿠스의 센티넬2 위성이 촬영했다. 올해는 특별히 심장이 박동하는 것처럼 섬이 움직이는 동영상으로 제작했다.
heart0.jpg »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평원의 스트로벨호수.
두번째 사진은 아르헨티나의 스트로벨호수다. 쥐라기호수로도 불린다. 파타고니아평원에 있으며 물이 매우 맑은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무지개송어가 살고 있는데, 이 때문에 쥐라기호수라는 별명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역시 코페르니쿠스 센티넬2 위성이 촬영했다.
heart11.jpg » 몽골의 한 호수.
세번째 사진은 몽골의 한 호수다. 2017년 국제우주정거장에서 활동하던 유럽우주국 소속의 프랑스 출신 우주비행사가 촬영했다. 그는 당시 트위터를 통해 “발렌타인데이가 또 다시 닥쳐왔다”며 이 사진을 공유했다.
Heart2.jpg » 남태평양 투파이섬.
남태평양에 있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산호섬인 투파이(Tupai)다. 유럽우주국의 프로바1 위성이 고도 600km 상공에서 촬영했다. 붉은색으로 칠한 부분이 육지다.
heart4.jpg » 인도 남서부 해안의 네트라니섬.
인도 남서부의 카르나타카주에 면해 있는 아라비아의 무인도 네트라니(Netrani)섬이다. 해안에서 20km 떨어져 있다. 유럽우주국의 코페르니쿠스 센티넬2(Copernicus Sentinel-2) 위성에서 찍은 것이어서 아주 작게 보이지만 모양만큼은 확실한 하트다. 역시 발렌타인데이를 기념해 적외선 장비로 빨간색 처리를 했다.
heart3.jpg » 크로아티아 앞바다 갈레쉬냐크섬.
남유럽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해에 있는 갈레쉬냐크섬이다. 폭 500m의 섬으로 일본의 지구관측위성 알로스(ALOS)에서 촬영했다.
herart5.jpg » 뉴칼레도니아섬의 맹그로브숲.
남태평양 뉴칼레도니아섬의 강과 해안을 따라 형성된 맹그로브 숲의 모습이다. 이 섬 북서쪽에 보이는 작은 하트 모양은 보(Voh)라는 마을에 인근에 있어 `보의 심장'이라고 불린다. 맹그로브 숲이 세월을 거치며 만들어낸 하트다. 한국의 항공우주연구원이 띄운 인공위성 아리랑2호가 2009년 4월1일 촬영했다.
heart6.jpg » 칠레 소금평원의 호수.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 소금평원 서쪽에 있는 하트 모양의 미스칸티호수다. 그 아래 작은 호수는 미니케 호수다. 담수보다 염분이 많지만 바닷물보다는 덜하다. 일본의 지구관측위성 알로스가 촬영했다.
heart7.jpg » 우주에 떠 있는 심장 `하트성운'.
마지막 사진은 지구에서 눈을 돌려 저 높은 하늘 위의 우주에서 찾아낸 하트 모양의 성운이다. 심장 모양을 닮았다 해서 하트성운(Heart Nebula)이라고 이름붙였다. 카시오페아 자리 동쪽에 있으며, 지구로부터의 거리는 7500광년이다. 성운이란 가스와 먼지구름이 뒤섞여 있는 천체다. 허블우주망원경이 촬영했다.

출처
http://www.esa.int/Our_Activities/Observing_the_Earth/Island_love
http://www.esa.int/Our_Activities/Observing_the_Earth/Loving_big
http://www.esa.int/spaceinimages/Images/2019/02/From_Earth_with_love

http://www.esa.int/spaceinimages/Images/2013/02/Heart_of_the_Pacific

http://www.esa.int/spaceinimages/Images/2018/02/Island_heart

http://www.esa.int/spaceinimages/Images/2011/02/The_heart-shaped_island_of_Galesnjak

http://www.esa.int/spaceinimages/Images/2015/02/Heart_of_Voh_New_Caledonia

http://www.esa.int/spaceinimages/Images/2014/02/Heart_of_the_Atacama

http://www.esa.int/spaceinimages/Images/2013/02/The_Heart_nebula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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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11일 금요일

소비자들이 상상한 2030년 미래 생활

da1.jpg » 3명 중 1명은 2030년 항공택시의 등장을 기대했다. 다쏘 웹사이트
다쏘 시스템스, 미 CES 맞춰 설문 결과 발표

10년 후 우리의 생활 환경은 어떻게 바뀔까?
8일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는 소비자가전쇼(CES)에는 이를 짐작해볼 수 있는 신기술 첨단제품들이 즐비하다.
전시회 참여업체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의 3D 소프트웨어업체 다쏘 시스템스가 행사 이벤트의 하나로, 현재의 소비자들이 상상하는 2030년 미래 생활의 모습을 조사해 내놨다. 미국 성인 소비자  103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여러 사람의 생각을 모아 특징을 분석해 보여주는 것은 어렴풋한 미래에 좀더 쉽고 구체적으로 다가가는 방식 가운데 하나다.
“이동할 땐 전기차, 항공택시, 준음속열차를 탄다. 집은 밖에서도 완벽히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홈으로 변신한다. 집안에선 홈로봇의 도움을 받는다. 아플 때도 웬만한 건 집에서 진단·치료할 수 있는 기기나 시스템이 있다.”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10년 후 미래 생활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렇다.
da2.jpg » 소비자의 70% 이상이 스마트홈이 실현될 것으로 봤다.
이동은 전기차·항공택시·준음속열차로
완벽한 스마트홈에 가상 도우미·로봇까지

우선 소비자들은 교통부문에서 시간과 비용이 절감되고 안전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응답자의 70% 이상이 전기차(하이브리드 포함) 시대의 도래를 내다봤다. 이제 개발 초기단계인 장거리용 하이퍼루프(준음속 진공열차)를 타고 여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도 절반을 약간 웃돌았다. 도심 정체 해소용으로 개발중인 항공택시를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 응답자도 38%였다.
가정생활 부문에선 70% 이상이 진정한 스마트홈의 실현을 예상했다. 집안의 모든 가전제품과 설비들이 연결돼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별도의 버튼 조작 없이도 음성만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로 인해 주택의 에너지 비용은 줄어들고 보안과 편의성은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절반에 가까운 49%는 가상의 가사 도우미나 로봇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da3.jpg » 맞춤형 제품이 일반화할 것이다.

가장 기대 높은 건 가정내 진단치료 시스템

 소비자들의 변화 기대치가 가장 높은 생활 부문은 건강관리와 관련한 것이었다. 80% 이상이 개인별 보건관리 시스템의 등장으로 질병 예방이 상당한 정도로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 83%가 자신의 행동 패턴이나 식습관에 기반한 가장 효율적인 맞춤형 질병 예방 프로그램을, 81%가 가정내 약물 투여 시스템을, 80%가 개인 건강 자료의 완전한 전자기록 시스템을, 80%는 가정내 질병 진단 시스템을 예상했다.
특히 설문조사에서 눈에 띄는 건 급속한 디지털 기술 발전에도 전통의 오프라인 상점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게 안에서의 쇼핑 방식은 크게 변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게 안에서도 디지털 기술이 일반화(81%)하고, 개인 맞춤형 제품(80%)을 구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da4.jpg » 스마트 배달 시스템으로 언제 어디서든 상품을 받아볼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일반 소매의 경우 84%가 모바일 결제와 온라인 주문을 통한 상시배달 시스템을 예상했다. 그러나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5%는 그렇다고 해서 2030년에 온라인 쇼핑만이 남아 있을 것같지는 않다고 답변했다.
 다쏘 시스템스의 플로렌스 베젤란 부사장은 미래생활 설문조사의 의미에 대해 "소비자들이 현실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과 현재 기술의 간극을 따져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고 설명했다.

 
출처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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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6일 일요일

주는 기쁨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gift1.jpg » 주는 기쁨과 받는 기쁨, 어떤 것이 더 강력할까? 픽사베이

주는 기쁨엔 `쾌락적응 법칙'이 적용 안돼

물건은 쓰면 쓸수록 닳아 없어진다. 생명체도 생장성쇠의 단계를 거쳐 결국엔 사라지고 만다. 인간의 심리 기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강한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그라든다. 이를 표현하는 행복심리학 용어 중에 `쾌락 적응'(hedonic adaptation)이란 게 있다. 특정한 경험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그것이 반복될수록 줄어든다는 걸 뜻하는 말이다. 심리학자들이 발견한 인간 심리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주는 기쁨'에서 얻는 행복감은 이 법칙의 예외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주는 기쁨과 받는 기쁨 중 어느 것이 더 강한 행복감을 안겨줄까?"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자 에드 오브라이언(Ed O'Brien)과 노스웨스턴대 심리학자 사만타 캐서러(Samantha Kassirer)는 이런 궁금증에 대한 실험 결과를 미 심리과학협회 저널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에 소개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반복해서 다른 사람에게 같은 선물을 주는 사람은 같은 선물을 반복해서 받는 사람에 비해 행복감이 줄어들지 않거나 훨씬 더디게 줄어들었다. 행복감을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통설과는 다른 연구 결과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기부를 하는 경우에는 횟수를 거듭해도 계속해서 신선하고 즐거운 느낌을 갖게 된다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똑같은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하는 기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gift4.jpg » 받는 기쁨은 시간이 흐를수록 크게 낮아졌지만, 주는 기쁨은 5일째에도 거의 변화가 없었다. 논문에서 재인용
기부자들은 시간 흘러도 행복감 줄지 않아

실험 방식은 이랬다. 연구진은 실험에 참가한 대학생들에게 5일 동안 매일 5달러를 줬다. 그리곤 매번 똑같은 데 돈을 쓰도록 요구했다. 무작위로 어떤 학생에겐 자신을 위해, 어떤 학생에겐 다른 사람을 위해 쓰도록 했다. 예컨대 매일 같은 카페에 들러 팁을 주든가, 같은 재단에 온라인 기부를 하는 식이다. 또 하루가 끝날 때는 자신이 어디에 썼으며 행복감은 어땠는지를 돌아보고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실험이 끝난 뒤 참가자 96명이 제출하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명확한 패턴이 드러났다. 자신에게 돈을 쓴 사람들은 5일 동안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행복감이 감소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돈을 준 사람들에게선 행복감의 감소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5번째로 주는 기쁨도 첫번째로 줄 때만큼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온라인을 통해 두번째 실험을 했다. 이 실험엔 502명이 참가했다. 연구진은 이들을 대상으로 10라운드에 걸쳐 단어 퍼즐 게임을 진행하면서 참가자들에게 1라운드당 5센트를 지급했다. 그리곤 참가자들이 이 돈을 자신이 선택한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자신이 갖도록 했다. 각 라운드 후에 참가자들은 게임에 이겼을 때와 같은 정도의 행복감과 기쁨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이 실험에서도 남에게 돈을 준 사람들의 행복감이 돈을 가진 사람의 행복감보다 훨씬 더디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gift8.jpg » 더 큰 돈을 주거나 받을 때도 마찬가지일지는 향후 연구 과제로 남겨뒀다. 픽사베이

초점이 행위냐, 결과냐에 따라 생기는 차이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날까? 연구진은 결과에 중점을 두는 것과, 행위에 중점을 두는 것의 차이로 해석했다. 돈을 받는 것은 결과에 중점을 두는 것이어서, 쉽게 비교할 수 있다. 이 경우 횟수가 거듭될수록 경험에 대한 반응이 둔감해진다. 반면 기부처럼 행위에 중점을 둘 경우엔 각 경험 간에 비교가 어렵다. 연구진은 기부 행위가 사회적 소속감과 연대감을 높여주고 자신의 사회적 평판에 도움을 주는 것도 행복감을 유지시켜주는 데 한몫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서 얻는 행복감이 바로 자선과 기부를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심리적 반대급부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번 실험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주거나 받을 경우에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올까? 또 낯선 사람에게 줄 때와 친구에게 줄 때는 어떤 결과가 나올까? 연구진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다음 연구 과제로 미뤘다.

출처
https://newschicagobooth.uchicago.edu/newsroom/joy-giving-lasts-longer-joy-getting
https://medicalxpress.com/news/2018-12-joy-longer.html
https://scienceblog.com/504917/the-joy-of-giving-lasts-longer-than-the-joy-of-getting/
https://www.futurity.org/giving-happiness-1942582/
행복 추구가 불행을 부르나
https://medicalxpress.com/news/2018-03-pursuing-happiness-unhappy.html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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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7일 화요일

무소음 이온풍 항공기 떴다

air1.jpg » MIT 연구진이 개발한 이온풍 추진 비행기. MIT 제공

프로펠러도, 터빈도 없는 비행기
MIT 개발자 "스타트렉에서 영감"

1903년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한 이후 모든 비행기에는 프로펠러, 터빈 날개, 팬처럼 공기를 추력을 만들어내는 장치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장치 없이 날 수 있는 소형 비행기가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미국 MIT 엔지니어들이 개발한 이 비행기는 터빈이나 프로펠러 대신 이온풍으로부터 동력을 얻는다. 터빈 동력 비행기와 달리 화석연료에 의존하지도 않고, 프로펠러 비행기와 달리 소음도 없다.
개발 작업을 이끈 스티븐 배렛 MIT 항공우주항행학 교수는 "지금보다 더 조용하고 단순하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새로운 항공기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머지 않은 미래에 이온바람 추진 시스템으로 저소음 항공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나아가 전통 내연기관과 결합하면, 연료효율이 훨씬 높은 하이브리드 여객기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가 이온풍 비행기의 영감은 어린 시절 즐겨본 TV 드라마 시리즈 <스타트렉>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당시 아무런 돌아가는 장치도 없이 조용하게 하늘을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우주왕복선에 매료됐다. 9년 전 조용한 비행 추진 시스템을 구상하기 시작한 그의 뇌리에 떠오른 것이 이온풍이었다.

air3.jpg » 이온풍 항공기를 뒤에서 본 모습. MIT 제공

양-음극 전선이 자석처럼 작용해 바람 일으켜

이온풍은 1920년대에 처음 확인된 물리 현상으로, 전류가 얇고 두꺼운 전극 사이를 통과할 때 생기는 바람이나 추진력을 말한다. 충분한 전압만 주어진다면 작은 항공기를 띄울 수 있을 만큼의 추진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온풍이 내는 전기기체역학 추진력은 주로 취미활동에 쓰여 왔다. 전원 공급장치에 연결된 이온풍 발생기로 탁자 위에서 작고 가벼운 물건을 띄워보는 정도였다. 전문가들도 이온풍으로 항공기를 띄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 왔다고 한다. 배렛은 "그런데 어느날 호텔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동안 문득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즉석에서 대충 계산해본 결과 실현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냈다"고 말했다.

수년간의 연구 끝에 그가 내놓은 시제품은 커다란 글라이더를 닮았다. 무게는 5파운드(2.45kg), 날개 길이는 5m다. 날개 앞쪽 아래에 달려 있는 얇은 전선이 양극을, 날개 뒤쪽 끝의 두꺼운 전선이 음극 역할을 한다.
동체에 있는 배터리가 4만볼트의 전기를 컨버터를 통해 양극 전선에 공급해준다. 이 전기는 대기중의 질소 원자를 양전하를 띤 이온 형태로 바꿔준다. 그러면 이 이온은 자석처럼 뒷쪽 음전하를 띤 음극 전선으로 빨려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각 이온은 공기분자들과 수백만번 충돌하고, 이 공기분자들이 뒤로 밀려나면서 항공기를 앞으로 밀어내는 추진력을 만들어낸다. 연구팀은 이 대학에서 가장 큰 체육관인 듀폰운동센터에서 60m 거리의 시험비행을 10여차례 진행하면서 추진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시험비행에서의 속도는 시속 17km였다.

air2.jpg » MIT 체육관에서 진행한 시험비행 타임랩스 사진. 논문에서 인용

"10~20년 후 소음없는 드론 나올 것"

물론 이번에 개발한 비행기를 실제 항공기에 적용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번 연구 결과는 단지 이온 비행기가 날 수 있다는 개념을 증명한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온 이온풍 추진 비행기의 가능성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큰 걸음을 내디뎠다는 평가다.
연구진 앞에 놓인 최대 과제는 더 적은 전압으로 더 많은 이온 바람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수만볼트의 전기에 승객을 태우거나 화물을 싣고 다니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아직은 기존 항공기가 더 효율적으로 추진력을 낸다.
그럼에도 이온풍 항공기에 기대를 거는 것은 항공기 비행 소음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드론이 활성화하려 할 경우 이온풍 추진 방식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다가올 수 있다. 배렛 교수는 앞으로 10~20년 후에 배달, 촬영 또는 환경 모니터링용 드론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 <네이처> 21일치에 실렸다.

출처
http://news.mit.edu/2018/first-ionic-wind-plane-no-moving-parts-1121
https://theconversation.com/ion-drive-space-engine-used-on-aircraft-for-first-time-107318?u
https://www.theguardian.com/science/2018/nov/21/first-ever-plane-with-no-moving-parts-takes-flight
논문보기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18-0707-9
http://news.mit.edu/2013/ionic-thrusters-0403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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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 이상 과반시대로...세계 소득지형이 바뀌었다

rich3.jpg

2028년 9월 현재 중산층 이상 인구가 38억명으로
인류 문명 1만년만에 빈곤 탈출 `티핑 포인트'에

유엔이 2030년을 목표달성 시점으로 설정한 `지속가능개발목표(SDG) 17가지' 가운데 첫손에 꼽은 어젠다는 빈곤 퇴치다. `SDG 17'의 제1항은 "지구촌 모든 지역에서 모든 형태의 빈곤을 퇴치한다"고 선언한다. 최근 인류가 마침내 빈곤 탈출의 티핑 포인트를 넘어섰다고 평가할 수 있는 징표가 나왔다.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농경시대로부터 시작된 인류 문명이 시작된 지 1만년만에 중산층이 세계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9월 현재 전 세계 중산층과 부유층을 합친 인구는 약 38억명에 이른다. 2018년 현재 세계 인구 76억명인 점을 고려하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보고서는 "농경시대 이후로 인류는 오랜 세월 생존을 위해 분투해왔으나 19세기 초반까지도 인류 문명은 본질적으로 먹고 사는 것이 급선무였다"며 "산업혁명 이후 생활 수준이 본격적으로 개선되면서 현재 전세계 빈곤층은 세계 인구의 8%선으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RICH33.jpg » 역사상 처음으로 중산층 이상 인구가 전세계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인용
1초마다 1명씩 빈곤서 탈출
1초마다 5명씩 중산층 진입

연구소는 188개국의 가구 소득 및 지출 통계(2011년 구매력 기준)를 토대로 전세계 가구를 네 계층으로 나눴다. 이에 따르면 최하위 계층인 빈곤층은 1인당 하루 1.9달러(약 2100원) 미만인 사람들로 6억3천만명에 이른다. 중산층은 하루 11~110달러(약 1만2000~12만원) 사이의 그룹이다. 중산층의 범주를 이렇게 잡은 것은 오토바이, 냉장고, 세탁기 같은 내구소비재를 구매하거나 영화 관람, 여행 등 몇몇 여가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가처분소득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나머지 두 그룹은 빈곤층과 중산층 사이에 있는 취약층 32억명, 그리고 최상위층인 부유층 2억명이다. 연구소는 "인구 통계와 경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현재 1초마다 1명씩 빈곤에서 벗어나고, 1초마다 5명씩 중산층에 진입하고, 2초마다 1명씩 부자가 탄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다른 계층의 증감 속도에 비해 중산층 증가 속도가 단연 빠르다는 얘기다.
RICH9.jpg
가계 지출의 3분의2 책임지는 핵심 계층

연구소가 중산층의 증가 속도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하나는 경제적인 측면이다. 중산층은 세계 경제에서 수요를 창출하는 가장 핵심적인 계층이다. 경제의 세 주체인 기업, 정부, 가계 중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가계다. 총수요의 절반을 차지한다. 나머지 절반은 기업 투자와 정부 지출이 비슷한 비율로 나눠 갖고 있다. 그런데 가계 지출의 3분의2를 책임지는 계층이 바로 중산층이다. 부유층은 1인당 씀씀이는 더 많지만 숫자가 적어 경제를 이끌어가기에는 힘이 못미친다. 취약층과 빈곤층은 쓸 돈이 너무 적어 영향력이 약하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기업들은 중산층을 목표로 삼아 왔다. 연구소는 "이는 선진국 경제에서 오랜 기간 증명된 사실"이라며 "중산층의 급증으로 이제 선진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이런 사실이 적용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연구소에 따르면 세계 중산층의 지출 규모는 연간 35조달러(2011년 구매력 기준)에 이르며, 2030년까지 연간 지출 규모는 29조달러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 GDP 성장률의 3분의1을 중산층이 책임진다는 것이다.
rich1.jpg »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의 예고편 장면.

향후 새로 늘어날 중산층 인구 90%는 아시아인
 기업엔 더 많은 기회, 정부엔 더 많은 숙제 안겨

새롭게 부상하는 중산층은 주로 아시아인들이다. 앞으로 추가될 10억 중산층의 약 90%는 아시아인이 될 것이라고 연구소는 내다봤다. 주로 중국, 인도, 동남아 지역이다. 연구소는 "올해 할리우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Crazy Rich Asians)이 인기를 끌고, 아시아의 다국적 기업들이 강력한 국내 브랜드를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측면이다. 중산층은 요구하는 것들이 가장 많은 계층이다. 정부에 대해 이전보다 더 많은 민주주의와 사회 참여, 더 나은 공공 복지와 교육, 보건, 치안 서비스를 요구한다. 또 혁명이나 급진적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하지만 세금을 더 많이 내는 것에는 반대한다. 이런 모순은 정치를 복잡하게 만든다. 중산층 증가는 기업엔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지만 정책 당국엔 풀기 어려운 숙제를 던져준다고 하겠다.
RICH5.jpg » 2030년 전세계 소득계층 분포 예상.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인용

한 해 평균 1억명씩 늘어난다...2030년 53억명으로

보고서는 세계 중산층 규모가 갈수록 늘어 2020년 40억명, 2030년 53억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한 해 평균 1억명 이상의 새로운 중산층이 탄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면 취약층은 2030년까지 9억명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극빈층과 부유층의 변화 폭은 상대적으로 적어 2030년까지 극빈층은 1억5천만명 줄고, 부유층은 1억명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소는 2030년 중국과 인도의 중산층 시장은 각각 연간 14조1천억달러, 12조3천억달러로 15조9천억달러의 미국 중산층 시장에 버금가는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중산층의 규모는 그 나라의 행복 수준과도 관련이 깊다. 갤럽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산층에 새로 진입한 사람들은 빈곤층이나 취약계층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보다 행복감이 높다.
rich2.jpg » 중산층 증가에도 불구하고 2030년 빈곤 퇴치라는 유엔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픽사베이

빈곤 탈출 속도 둔화...2030년 빈곤 퇴치는 어려울 듯

하지만 지금의 추세로 `2030년 빈곤 퇴치'를 달성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 중산층의 급증세와 달리 빈곤층 감소 추세는 기대보다 더딘 편이다. 유엔의 지속가능개발목표 실행 시작 시점인 2016년 1월부터 2018년 7월 사이에 빈곤에서 벗어난 숫자는 8300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연평균으로 따져 2030년까지 `빈곤층 제로'를 달성하려면 이 기간에 1억2천만명을 탈출시켜야 했다. 이 격차를 줄이려면 앞으로 빈곤층 감소 속도가 훨씬 더 빨라져야 한다.
2016년 초반 통계를 기준으로 할 때, 2030년 빈곤 퇴치를 위해선 1초당 1.5명을 빈곤에서 탈출시켜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러나 현재 빈곤층 감소 속도는 1초당 1.1명에 머물러 있다. 더욱 최근 들어 많은 나라에서 빈곤 탈출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 연구소는 이제는 1초당 1.6명으로 속도를 더 늘려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빈곤 탈출 속도가 2020년엔 매초당 0.9명, 2022년엔 매초당 0.5명으로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연구소는 우려했다.
rich88.jpg » 흰색은 빈곤 퇴치 국가, 녹색은 2030년 빈곤 퇴치 가능 국가, 노란색은 2030년 빈곤 퇴치 미흡 국가, 빨간색은 빈곤 악화 국가. 출처:worldpoverty.io
빈곤층 문제의 중심 아프리카...2030년엔 빈곤층 90%가 아프리카인

세계 빈곤층 문제의 중심은 아프리카다. 전세계 빈곤층의 3분의2가 아프리카 사람들이다. 게다가 아프리카에서는 오히려 빈곤층이 늘고 있다. 빈곤층이 늘고 있는 전세계 18개국 가운데 14개국이 아프리카 나라들이다. 올 한 해만 해도 320만명이나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빈곤층 인구 1위는 인구대국 중국이나 인도가 아닌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다. 인구 2억600만명으로 세계 7위인 나이지리아는 2018년 5월 현재 빈곤층 인구 8700만명으로, 인도(7300만명)를 제치고 세계 최대 빈곤층 국가가 됐다. 나이리지아에선 현재 1분마다 6명꼴로 빈곤층이 늘어난다. 반면 인도에선 빈곤층이 꾸준히 줄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 않아 콩고민주공화국도 인도를 제치고 빈곤층 인구 2위에 오르고, 2030년엔 세계 빈곤층의 90%가 아프리카인일 것으로 연구소는 예상했다. 세계적인 중산층 증가 추세 속에서 대륙간 불평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출처
https://www.brookings.edu/blog/future-development/2018/09/27/a-global-tipping-point-half-the-world-is-now-middle-class-or-wealthier/?
https://www.brookings.edu/blog/future-development/2018/06/19/the-start-of-a-new-poverty-narrative/
http://newspeppermint.com/2018/11/12/m-bourgeoisie/
https://capx.co/bourgeoisie-of-the-world-unite/
http://www.crazyrichasiansmovie.net/
빈곤 시계
https://worldpoverty.io/
세계 중산층 급증 보고서(브루킹스연구소, 2017.2.)
https://www.brookings.edu/wp-content/uploads/2017/02/global_20170228_global-middle-class.pdf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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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5일 일요일

인공지능이 대본 쓴 광고가 나왔다

lexus.jpg » 인공지능이 쓴 대본으로 제작한 렉서스 광고. 렉서스 제공
도요타, IBM 인공지능 왓슨 활용
 15년간 칸광고제 수상작들 분석

인공지능이 작성한 대본으로 제작한 동영상 광고가 나왔다.
도요타자동차는 아이비엠의 인공지능 왓슨이 작성한 대본으로 제작한 렉서스 광고를 19일 공개했다. 이는 인공지능이 대본을 작성한 최초의 상업광고라고 도요타는 밝혔다.
 60초짜리 이 광고는 오스카상 수상 경력이 있는 케빈 맥도날드가 감독을 맡았다. 도요타는 유럽시장에 내놓은 렉서스ES 이그제큐티브 세단의 광고 제작을 위해 우선 왓슨팀과 협력해 지난 15년간 칸광고제에서 상을 받았던 도요타 자동차 캠페인들의 영상과 대본, 음성, 그리고 일련의 외부 데이터를 분석했다. 왓슨은 이를 통해 "정서적으로 지적이면서도 즐거움을 주는" 요소들이 뭔지를 파악했다.
그러나 기계가 모든 작업을 수행한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 엔진은 대본 흐름과 줄거리를 만들어냈고, 전문 창작기관이 스토리를 완성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동제동장치로 사고 모면

광고 내용은 신형 렉서스ES를 세상에 내놓은 렉서스의 기능장(다쿠미) 이야기다. 왓슨은 스토리 막판에 반전 플롯을 제시했다. 그 내용은 `충돌사고가 나려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동차의 자동 비상 제동 시스템이 시작돼  차에 내장된 기술의 가치와 효용성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감독 맥도날드는 성명에서 "대본을 손에 들었을 때 이 이야기에 담긴 멜로드라마의 가능성에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직관주행'(Driven by Intuition)이라는 제목의 렉서스ES 광고는 19일부터 유럽 전역의 온라인, 소셜 채널과 영화관에서 공개됐다. 아직 TV 방영 스케줄은 잡혀 있지 않다. 렉서스는 조만간 제작 뒷이야기도 공개할 예정이다.
영국 아이비엠 왓슨의 미디어엔터테인먼트담당 리스 메드웨이는 "스토리텔링은 인간의 창의적 작업에 언제나 생동감을 불어넣어주는 마법을 부린다"며 "왓슨을 이용해 과거 상을 받은 창작품의 공통속성을 확인하는 것은 인간과 기계가 인공지능시대에 어떻게 협력할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컴퓨터가 전문가들의 창의적 작업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스토리텔링에서는 강력한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얘기다.

출처
https://variety.com/2018/digital/news/lexus-ai-scripted-ad-ibm-watson-kevin-macdonald-1203030693/

곽노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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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악의 해는 서기 536년

volcano_plume_2010_04_17.jpg » 2010년 4월 아이슬란드 에이야피아들라예퀴들화산 폭발 장면. 화산재가 남하하면서 당시 유럽 전역의 공항이 마비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536년 화산재가 유럽-아시아 하늘 뒤덮어
가뭄-기근에 기아자 속출...한여름 눈까지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해는 서기 536년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기 시작한 1349년, 최대 5천만~1억명의 희생자를 낸 것으로 추정되는 1918년 스페인독감을 제치고 이 해가 선정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해는 동로마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통치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 큰 전염병이나 전쟁이 없는 조용한 시기였다.
문제는 하늘에서 일어났다. 최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소개된 고고학 저널 <앤티쿼티>(ANTIQUITY)의 11월15일치 논문에 따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먼지 안개가 무려 18개월 동안 유럽과 중동, 아시아 일부 지역의 하늘을 뒤덮어 태양을 가렸다. 그러자 기온이 급락해 세계 곳곳에서 가뭄, 흉작, 기근이 확산되고 중국에선 한여름에 눈이 내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해의 여름 기온은 1.5~2.5도 떨어졌는데, 이는 2300년만에 가장 낮은 기온이었다고 한다. 당시 동로마제국의 역사가 프로코피우스는 "태양이 일년 내내 달처럼 밝지 않은 빛을 냈다"고 기록했다. 아일랜드에선 536년부터 539년까지 빵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번 연구를 이끈 미 하버드대 고고학자이자 중세역사가 마이클 맥코믹(Michael McCormick) 교수는 "이 해는 최악의 생존 고난기간이 시작된 해"라고 말했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과학을 통해 불분명한 인류의 과거사 진실을 밝혀내는 `인류과거과학 이니셔티브'를 이끌고 있다.
volcanic_ash_composite.png » 2010년 당시 아이슬란드 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재가 날아간 지역. 위키미디어 코먼스
원인은 아이슬란드 화산 대폭발
2차례 더 폭발하며 100년간 고난

최근 하버드대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연구팀은 광범위한 자연 재해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536년 초에 시작된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이 원인이었음을 밝혀냈다고 보고했다. 재앙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541년엔 흑사병의 일종인 선페스트가 이집트 북동부의 펠루시움에서 발병했다.  ‘유스티니아누스 역병(Plague of Justinian)’이라는 이름의 이 전염병으로 동로마제국 인구의 3분의1~2분의1이 목숨을 잃으면서 모든 것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사실 역사가들은 이 기간이 암흑의 시대였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체 불명의 그 거대한 구름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수수께끼였다. 이번에 맥코믹팀이 스위스 빙하층에 대한 초정밀 분석을 통해 그 원인을 밝혀낸 것이다. 연구진은 540년과 547년에도 잇따라 대규모 화산폭발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폭발로 고난의 기간이 더 길어졌다.
이 고난은 언제까지 계속됐을까? 연구진은 100여년이 지난 640년 얼음층에서 경제 재건의 신호를 발견했다. 그 신호는 납이었다. 이는 인간이 납 광석에서 은을 채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은화 주조가 증가하면서 납 농도는 660년, 695년에 급증했다. 이는 최초의 상인계층 탄생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얼음층의 납 농도는 1349~1353년 급락했다. 이는 흑사병이 번진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자연의 급변이 초래하는 재앙이 얼마나 가공할 만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이는 인간 활동으로 가속화하는 기후변화가 초래할 재앙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Volcanic_Lavender.jpg » 화산재로 햇빛이 라벤더색으로 산란된 모습.위키미디어 코먼스

72미터 빙하코어서 증거 확인..."게임 체인저"

이번 분석에 사용한 빙하는 2013년 스위스 알프스의 콜레 그니페티(Colle Gnifetti)에서 시추해낸 높이 72m의 빙하코어(오랜 기간 묻혀 있던 빙하에서 추출한 얼음 조각)다. 이 얼음 덩어리에는 지난 2000년 동안 이 곳에 흘러온 화산재 낙진, 사하라사막의 먼지 등이 간직돼 있다. 연구진은 이 얼음을 새로운 초고해상도 분석 장치를 이용해 판독했다. 이 장치는 레이저로 얼음을 120미크론(1미크론=0.001mm) 크기로 잘라 그 성분을 분석해낸다. 이런 식으로 5만개의 샘플을 채취해 그 안의 물질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추적해 비교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빙하가 타임캡슐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영국 노팅엄대의 고고학자 크리스토퍼 러브럭 교수(Christopher Loveluck)는 "우리는 이제 초고해상도의 환경 기록과 비슷한 초고해상도의 역사 기록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며 "이는 진정한 게임 체인저"라고 이번 연구의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출처
https://www.sciencealert.com/scientists-have-determined-the-worst-year-in-human-history
https://www.sciencemag.org/news/2018/11/why-536-was-worst-year-be-alive?utm_campaign=news_daily_2018-11-15&et_rid=17776030&et_cid=2490907
하버드대 인류과거학 이니셔티브
https://sohp.fas.harvard.edu/